대장은 말없이 고개를 까딱여요.
인간이 고장 난 인형처럼 쉬지 않고 말해요.
“제가 이상하다고 한 건
이 식당이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가정식 백반이라는 게,
저는 한 번도 이런 걸 집에서
먹어본 적이 없어서….”
꼭 변명하는 것 같아요.
대장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새침한 얼굴로 돌아가
다시 칼질을 시작해요.
“고등어 다 타겠어요!”
앗, 입구에 앉은 물벼룩이
외치는 소리를 들은 나는
후다닥 연탄불 앞으로 달려가요.
이럴 땐 식당이 콩알만 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떨어져 있어도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작은 식당이라 다행이지 뭐예요.
“저, 계속 얘기해도 될지.”
“하시죠.”
여기에서도 대장의 귀는 잘 보여요.
쫑긋쫑긋. 매캐한 연기 속에서도
반짝이는 구두 역시 잘 보이고요.
그런데 어디서 봤더라, 진짜.
인간의 목소리가 회색 연기를 타고
귓가로 흘러들어요.
“집에선 늘 시리얼을 먹었어요. 아시죠?
옥수수를 납작하게 누른.
운이 좋은 날은 색색의 시리얼이 있었고,
운이 나쁜 날은 그냥 납작하고
노랗기만 한 시리얼이 있었죠.
그게 아니라면 냉동 볶음밥, 빵,
컵라면, 봉지라면.
가끔 밥을 해 먹거나
찌개를 만들어 먹기도 했지만,
고등어라니…….
그런 걸 구워 먹는 건
정말 귀찮은 일이잖아요.”
“그런가요.”
“나물도 마찬가지예요.
먹는 건 금방인데,
다듬는 데만 시간이 다 가죠.
그래서 왜 이렇게 번거로운 음식들에
‘가정’식 백반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지 궁금했어요.”
그렇구나.
고등어 머리를 자르고,
물에 씻고, 채반에 받쳐
물기를 빼고 굽는 과정들이
할머니에겐 너무 자연스러워서
한 번도 번거로운 일일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할머니는
아주 평화롭고, 느긋하게
그 모든 일을 다 끝내고
웃으셨으니까.
“아니 사실은 알고 있어요.
그런 수고로운 과정을 거쳤으니까
‘가정’식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겠죠.”
인간은 숲고등어 살점을
젓가락으로 발라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어요.
“가정이라는 건 그래야 하니까.”
부스러진 살점에는 가시들이
두어 개 남아 있었어요.
살짝 인상을 찌푸리던 인간이
입안에서 가시를 끄집어냈어요.
“저는 일요일엔 언제나
검은 터틀넥을 입는 아이였어요.”
대장의 귀가 쫑긋 섰어요.
비밀스러운 이야기,
값비싼 이야기를 들을 때만
나오는 습관이에요.
“목을 가리는 옷 말입니까?”
인간이 고개를 끄덕여요.
“네, 맞아요. 그걸 입었어요.
평일에는 교복을 입었고,
토요일엔 집에 있었지만,
일요일엔 꼭 교회를 가야 했거든요.
땀이 뻘뻘 나는 한여름에도
부모님은 꼭 검은 터틀넥을
제게 입히셨어요.
그리고 한 주 동안 저지른 죄를
용서받기 위해 교회로 갔죠.”
“이유는?”
“가릴 게 있어서요.”
인간이 숲고등어를
오물거리며 말했어요.
“목 아래로는
이 숲고등어 같은 색이었거든요.
붉고, 푸르고, 검고.”
대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인간의 말은 알쏭달쏭했어요.
할머니의 몸에도
검은 반점이 촘촘하게 있긴 했지만,
붉고 푸르고 검다니,
몸에 물감이라도 쏟은 걸까요?
알록달록한 인간의 몸을 상상하던 내게서
시선을 돌리며 인간이 무심히 말했어요.
“매번 이 길을 지나쳤는데,
이런 식당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계속 여기 있었나요?”
“네.”
“그럼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
제 눈에 나타났나 보군요.”
인간이 후후 웃으며 된장국을 떠먹어요.
대장의 눈빛이
아까보다 누그러진 것처럼 보여요.
“값으로 충분하진 않겠지만,
비밀을 하나 알려 드릴까요?”
“…….”
“전 가족이 없답니다.”
인간은 하나도 웃기지 않은 말을 하곤
후후- 웃어요. 꼭 흩어질 것 같은 웃음소리.
저 웃음소리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원래는 있었는데,
오늘부로 없어졌어요. 그러기로 했죠.”
“그렇군요.”
대장은 채반에 가득 쌓인 대파를
된장찌개에 우르르 쏟아 넣었어요.
“쓸모가 없어졌어요,
서로에게. 저
는 이제 저 혼자서 살아갈 수 있어요.
아버지는 힘이 빠졌고,
어머니의 한탄은 의미 없는 노래거든요.”
대장이 작은 냉장고를 힐끔 돌아봐요.
저기엔 만월주 뿐인데. 고민하고 있나 봐요.
만월주를 내어줄까 말까. 그
러는 동안 인간의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파도처럼 흔들려요.
“전 너무 커버렸어요. 아버지의 힘도,
어머니의 무관심도,
더는 저를 가로막을 수 없을 만큼.
그래서 이제 그만 하자고 했죠,
우리가 가족인 것을.”
인간들은 키가 크면 가족을
그만두는 걸까요?
“우리에겐 너무 어울리지 않았어요.
가정식 백반이라는 건
이런 거잖아요?
나물과 된장찌개와
고등어 같은…….”
인간의 등이 어쩐지
조금 쓸쓸해 보이는 것 같아요.
대장이 뭔가 결심한 듯
등을 돌려 걸어가요.
곧 찰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만월주 한 병이
인간의 테이블 위로 옮겨가요.
인간은 감사하다는 말을 대신해
까딱 인사를 해요.
“시리얼과 냉동 볶음밥,
멸균우유 따위로 ‘가정’식 백반이라니.
애초에 아닌 것들을 모아
억지로 이름을 붙여놓았으니
망가질 수밖에.”
인간은 만월주를 잔에
가득 따라 단숨에 들이켜요.
“이걸 먹어보니 더 알겠어요.
우린 서로에게 급하게 허기를 채울
옹색한 무엇이었을 뿐이에요.”
빨간 구두와 허스키한 목소리,
가방에 매달린 반짝거리는 엠블럼…….
퍼즐처럼 머릿속에 왔다갔다하는
그것들을 모아
나는 머릿속으로
열심히 조립하려 애썼어요.
“그래서 버렸어요. 가족 따위.”
아! 기억났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그 사람이에요!
만월이 뜬 새벽에 내게
찾아오던 그 사람!
할머니가 뒤척이던 그 새벽,
울음을 참지 못해 창가에서
붙어 있을 때면 저 멀리 골목 끝에서
반짝거리는 빨간 구두가
또각거리며 걸어오곤 했어요.
짙은 술 냄새와 함께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오던 그 구두!
바로 저 구두가 분명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