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그때여 6학년8반 이덕분씨가 있었는디 5년차 ‘할마’였다. 할마라는 말은 할머니하고 엄마를 합친 것이니, 이덕분씨 딸이 낳은 외손주 5살 손자 고지안, 3살 손녀 고새롬, 이 남매를 돌보고 있었든가 보더라. 황혼육아는 협박과 회유, 큰소리가 난무하는 총알없는 전쟁터! 아침 6시, 어린이집, 유치원 등원을 향한 전쟁이 시작되는디
(자진모리)
아침 6시 딸네 집으로 출근~
손주들을 깨우는디 “비몽이냐 사몽이냐~”
어르고 달래 아이들 깨워놓고
세상에서 제일 큰일 밥 먹이기 시작헌다.
밥상을 채려놓고, “어서와, 밥 먹자~”
대꾸가 없네.
“어서 와서, 밥 먹자고~”
또 대꾸가 없네.
밥상을 끌고 가서 테레비 보는 아이 입에 “아~ 새롬이 먹자 아~ 옳지~”
게임을 하는 아이 입에 “아~ 지안아~아~먹어”
“싫어” “먹어” “싫어” “좀 먹어” “싫어, 안 먹어~!”
팔을 휙 저어놓니 국그릇이 방바닥에 차르르르르르
국물이 흥건~ 방바닥을 행주로 훔치고
“밥 먹으면 빵주께~” “알았떠~”
먹이는데 성공~!
이번에는 치카치카 양치질~
“할마, 치카 싫어~”
“새롬아 치카치카 안하면 할마 틀니 이거 빼보께. 이빨이 한 개도 없네. 아이 무셔라~”
“아이 무셔~” “치카치카하면 쪼꼴렛 하나 주께~” “아~~~”
치카치카 성공~!
다음 관문은 옷 입히기~
빤스도 안 입은 손주들이 활개 훨훨~
한 놈은 이쪽으로 뛰어다니고~ 또 한 놈은 저쪽으로 기어다니고~
나 잡아 봐라~~ 술래잡기 시작헌다~
“이놈의 시키들~!”
한 놈 잡았다. 옷을 입혀놓고 보니 “야~~ 이뻐~!”
또 한 놈 겨우 잡아 “야~ 멋져~~!”
옷 입히기 성공~!
이러다가 지각이다~!
마지막 관문은 유치원 버스 태우기~ 어서 빨리 가자~
‘할마~ 나 양말~~!’
“한쪽 양말 여기 있다~ 어서 신고 가자~”
‘할마~ 나 가방~!’
“야들아~ 가방 두 개 내가 양쪽에 짊어졌다. 어서어서 빨리 가자~”
현관문을 나서서 엘리베이터 타고 쪼르르르르르 내려가
뛰자 뛰자 달려가자~ 저기 버스정류장이 바로 코앞이다~~
“버스 놓치면 큰일이여!! 지안아, 언능 뛰어가 버스 잡아라~”
꽁무니에 불난 듯 뛰어 정류장에 도착 하자마자 유치원 버스 도착!
버스 태우기 성공~! 오늘 등원 성공~! 빠이빠이 빠이빠이빠이빠이야~ 만세~!!
헉헉헉~ 숨을 고르고,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휘모리)
딸네 집으로 돌아가서 보이는 것이 빨래더미~
(관객: 빨래더미, 빨래더미, 빨래더미, 빨래더미)
흰 빨래 검은 빨래 나누어서 돌려놓고~
(관객: 돌려놓고, 돌려놓고, 돌려놓고, 돌려놓고)
돌아서면 쌓여있는 설거지,
(관객: 설거지, 설거지)
행주에 퐁퐁 묻혀 언능 후딱~
어서 빨리, 싸게싸게, 날래날래, 냉큼냉큼 해치우자~
널부러진 장난감 치우면서 청소기를 (고수 요란하게 웽~ 웽~ 웽~ 소리를 내면 소리꾼이 ‘요즘 청소기는 저런 소리가 아녀~’ 소리가 얌전해진다.) 새것이 좋아~ 돌려놓고~
베란다에 빨래를 널고 나면 온몸에서 저절로 나오는 소리~
“아이고 어깨, 허리야, 무릎이야, 손목이야~
아이고 배고파. 11시가 되었구나~” 허고
(도섭) 겨우 밥 한 술 뜬다~
(아니리)아이고메 뽀사지겄네~
(아니리)
덕분씨 딸이 간호사. 인생이 3교대라. 처음에 지안이 났을 때 딱 1년만 봐주기로 했는디, 1년이 지나도 3교대, 그 다음 새롬이 났을 때, 그때도 3교대. 지금까지 아직까지 여적까지 3교대. 그 덕분에 덕분씨가 남매를 5년 동안 쭉~ 돌보게 되었든가 보더라. 인생 6학년이면 아직 꽃중년~ 남들은 바다로 가네, 산으로 가네, 놀러다니기 바쁜디, 우리 덕분씨는 딸네 집에 꽁꽁 묶여가지고 그 모습이 눈에 띄게 확 변하는디 꼭 이렇게 변하든 것이었다.
(늦은 자진모리)
얼굴색은 벌겋고, 머리칼은 푸석푸석,
눈은 그렁그렁, 코는 벌렁벌렁, 입은 실룩실룩,
욕이 절로 튀어나와~ “에라이~ 썪을~!”
남들이 만류하며 얘기하길~
황혼육아 1년 하면 폭삭 늙고
2년 하면 허리디스크 수술하고
결국은 딸네집 싱크대 앞에서~ 손주 업고 엎어져 죽는다더니
내가 그렇게 되겄구나~!
내 이름이 이덕분이라고, ‘엄마 덕분이야’, ‘장모님 덕분입니다~’
덕분이란 말만 듣다 내 인생 말년 황혼이 지겄구나.
가슴속에 화가 그득그득그득그득그득그득그득그득~ 터지기 일보직전!
(아니리)
덕분씨 화병났네~
(판놀음) 판소리화병치유센터 대목
황혼육아 해보신 분은 아실거요. 덕분씨가 화병이 나게 생겨슈, 안생겼슈?
하루난 덕분씨가 터질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걷다가 저기~ 보이는 것이
판소리화병치유센터!
“화병 치유~? 한번 가보까~!” 하고 들어갔는디
그때 마침 화병치유센터장이 이렇게 화병난 분들을 잔뜩 모아놓고 이제 막 한바탕 화병 치유를 할라고 막 시작하던 참이었든가 보더라.
(가발 쓰면 센터장으로 변신한다)
(고수)
네~ 만장하신 신사, 숙녀, 화병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의 화병을 잠 재울 판소리화병치유센터장을 여러분들게 소개합니다. 큰박수를 부탁해요~
(소리꾼이 센터장으로 변신하여)
안냐세요~ 안냐세요~ 화병치유센터장 인사 올립니다~
누구 때문에 화병 나셨나요~? 그 웬수! 가슴속에 묻고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믿십니까~ (관객 : 믿십니다) 믿십니까~ (관객 : 믿십니다) 좋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났는데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마음을 열어줄 노래를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바쳐서 무엇하나~ 우리 판소리화병치유센터 주제곡이에요~ 한번 같이 큰소리로 같이 해보실까요~?
(태평가. 굿거리)
짜증은 내어서 무엇허나 성화를 바쳐서 무엇허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보세
니나노~~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얼싸 좋다~ 얼씨구 좋아~ 벌 나비는 이리저리 훨훨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찌지지 지지지지릿지지짓지지지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오마나 오마나~ 명창들만 모이셨네~
이제 본격적으로 판소리 발성으로 화병을 날려 보낼거에요~
준비됐나요? (관객 : 준비됐어요~)
먼저 본청, 본청은 내 목소리 내는거에요. 아---시작 (관객 :아----) 싸 좋아요~ 이제 아~를 길게 내빼고 끝까지 끝까지 끝까지 한 다음에 오장육부를 쥐어짜고 똥구녕을 막아요~ 오장육부를 쥐어짜고 똥꾸녕을 막고 숨을 다 내보내야 화도 풀리고 기도 저절로 사는거에요~
아- 길게 시작 아-- (관객 :아----) 끝까지 끝까지 끝까지 오장육부를 쥐어짜 똥꾸녕 막어 똥꾸녕~똥꾸녕 막어 똥꾸녕~~ 싸! 잘했어요.
이제는 하청 아~~~ 시작 아~~~ 머리를 떨지 말고, 대장을 떨어, 변비에 좋아요~ 아싸 이게 떠는음이야 소리나 사람이나 떨림이 없으면 뻣뻣허죠. 자 아~~~ 시작 아~~~ 싸.
그 다음은 꺾는음 아아~, 꺾이죠~ 시작. 아아~ 꺾는음은 서러움이에요. 설러움을 담아서 아아 길게 시작 아아~~싸! 야~ 잘 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통성, 가슴속에 그 웬수를 부르면서 내 몸이 통이여, 질러~
웬수야~ 시작 (관객 :웬수야----)싸. 3단 고음 아세요~? 통성 3단 고음 한번 도전해보겠어요~ 준비됐나요? (관객 : 준비됐어요~) 웬수야 아 아~ 이렇게. 알았죠? 웬수야~ 시작~ (관객 :웬수야--아-아-)싸. 너무 멋있어.
이것이 바로 화병치유 기본발성이에요. 화 날 때마다 뚜껑 열릴 때마다 해보는거에요. 본청 아---- 떠는음 아~~~ 꺾는음 아아~, 통성, 웬수야아~~아~~~아~~~ 싸~! 아까 그 웬수 가슴속에서 날라갔죠~? (관객 : 예~!)
이렇게 하면 화도 풀리고 기가 저절로 살아나는거에요.
다같이 음메 기 살어 (관객 : 음메 기 살어) 제가 ‘음메~’하면 저절로 ‘기살어’하시는 거에요. 음메~ (관객 : 기살어) 신날 때는 신나게 음메~ (관객 : 기살어) 힘들 때는 힘내라고 음메~ (관객 : 기살어) 음메~ (관객 : 기살어)
다음에 또 만나요~ (가발 벗으면 이덕분으로 변신)
(아니리)
“그려~! 덕분씨가 화병치유를 하고 나더니 힘들 때는 참지만 말고 본청 아--, 떠는음 아~~~ 꺾는음 아아--, 통성 웬수야아-- 음메~ (관객 : 기살어) 속이 풀리는구먼.” 덕분씨는 그 성격대로 무슨 소리를 내도 한결같이 음이 똑~같은디,
힘들 때마다 소리를 내봤더니 진짜로, 정말로, 참말로, 확실히 힘이 좀 나든가 보더라. 그려, 이렇게 화병치유를 허고 기분좋게 손주들을 씻기려고 머리띠를 찾는데, 양쪽에 빨간 뿔 달린 붉은 악마 머리띠가 있겄다. 이걸로 머리를 착 올려 띠고 “야들아, 한번 씻어볼까~”
(엇모리)
욕조에 물 받아 장난감 넣어주니 지안이는 물장구 치면서 놀아.
어헐씨구 퐁당퐁당 시원하니 좋구나~
아담한 다라이에 새롬이 앉히고 머리위에 비누칠 홈뻑 칠하였다.
앗~ 따거, 앗 따거~ 울면서 몸부림~
아이 안고 씨름 헐 제
그때여 지안이 붉은악마 뿔을 보고 눈빛이 번쩍번쩍 장난기 발동~
물총을 빵야빵야~ 빵빵야~ 빵야빵야~~~빵빵야~빵야빵야~~~
순식간에 할마는 얼굴이 물범벅 소스라치게 놀라 새롬이를 놓쳤구나.
다라이에 빠쳤구나. 응아아아 응아아아 응아~
(자진엇모리)
할마 급한 마음, 할마 급한 마음, 새롬이를 얼른 건져
더듬더듬 더듬더듬 덧더듬 더듬더듬 더듬~ 심봉사 심청이 씻기듯
눈앞은 컴컴, 정신은 혼미, 새롬이는 울고, 지안이는 쏘고
끝도없이 빵야빵야 빵빵야 빵야빵야 빵빵야 빠빠빠빠빠빠빠빠빠
“야이 썪을 놈의 시캬~! (기진맥진하여) 고만 좀 쏴, 야 대가리 내 대가리, 양 대가리가 싹 다 깨져 나가겄어. 이 철없는 시캬!”
(중중모리)
하필 그때 간호사 따님이 퇴근했네
‘엄마~~ 욕하지 말랬지~!!’
지 새끼들을 얼른 챙겨 방으로 들어가며
눈을 착 내리깔고 왼 턱을 척 올리면서 레이저를 쏜다~ 팍 팍 파바박팍~
팍~ 팍~
그 눈빛 비수 되어 엄마 가슴에 팍~ 박히는구나
(중모리)
가슴 쾅쾅 내리치며~ 아이고 가심이여~
내가 무엇이 아쉬워 여기 있나
애 봐준 공은 없다더니 옛말 그른 거 없구나
몸이 닳도록 일을 하여도 돌아오는 건 면박이로다 구박이로다.
에미 심장이 갈갈이 찢기는 걸 너는 어이 모르는다
(판놀음) 눈물인지 콧물인지. 밥 차려주고 놀아주고
눈물인지 콧물인지 손주 놈이 쏜 총물인지 닦고 있을 적에
‘까꿍, 오후5시 퇴근시간입니다.’
“응~ 그려 가자. 내 집으로 가자.”
갈라고 허는디, 그때 딸이 방문을 빼꼼이 열더니
‘엄마, 나 밥~!’
“(관객에게) 어떻게 하면 좋겄어요? 차려줘, 말어?(관객반응) 어쩌겄슈~ 자식 앞에선 꺾는음이지아아~~~ 좀 풀리는구먼~ 그랴! 너도 니 새끼들 때문에 밥 차려 먹을 저를이 어딨겄냐~” 밥을 채리는데
지안이가 오더니 ‘할마~ 놀아줘~’
“놀아줘~? 오늘은 또 손주한테 얼마나 얻어터질랑가~ 야 앞에서는 그냥 떠는음이여 아~~~ 힘을 내자~ 그랴! 너랑 놀아줘야 니 에미가 밥을 편히 먹지.”허고 놀아보는디
(스타등장 나팔소리(고수). 이덕분씨는 복대를 차고 풍선 칼을 객석의 관객에게 주면 그 관객은 고지안이 된다. 칼싸움을 한번 할 때마다 손목 스냅, 허리, 무릎 등이 아프고 시큰 거린다. )
고수 :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외할머니 대 손자 손자 대 외할머니의 피 터지는 칼싸움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거실입니다. 네, 선수 입장하겠습니다. 청코너~ 칼싸움을 하루 종일 기다려왔다, 손자, 고지안 선수~!!! 홍코너~ 손주만 보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러나 질 수 없다. 외할머니 이덕분~!! 땡! 네, 공 울렸습니다. 청코너 고손자의 공격입니다~!!!!........
(고수가 상황에 맞게 즉석으로 칼싸움 중계를 한다. 결국 이덕분씨는 허리가 아파서 기권을 하고 고수는 흰수건을 던지고, 고지안이 이긴다)
손자 고지안 선수 이겼습니다~ 손자 승~!! 음메~” (관객 : 기살어~. 객석으로 돌아간다)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손목이야~” 이러고 있는데
“엄마, 내일은 건강검진 꼭 받아~ 엄마가 건강해야 우리 애들 잘 봐주지~”
“하하하하 우리 딸이 다른 건 몰라도 건강검진은 확실하게 시켜줘요~”
딸 덕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이덕분 환자!”
(동살풀이)
환자분은 손주병 종합병동~
애들을 들었다 놨다 할 때마다, 허리 하중이 눌려 허리디스크,
무릎에 관절염의 가속화, 어깨에 회전근개 파열,
무릎에 하중 눌려 연골파열, 십자인대. 근육통~
집안일, 빨레질, 걸레질, 설거지에~
손목터널 증후군, 손목건초염, 무릎 관절 퇴행성, 척추협착증, 추간판 탈출증,
아파서 잠 도 잘 못자 불면증.
무조건 쉬셔야 돼~
이대로 냅두면 할머니 골로 갑니다. 골로 갑니다~ 골로 갑니다~~할머니!
(트롯트 동살풀이)
“의사들은 협박쟁이야 뭐~ 내 허리 꺾일소냐 뭐~!
내 허리 내 허리 손주 둘 키우고, 우리 딸 우리 사위, 네 식구가
이 허리통에 달렸어 이 냥반아~!”
큰소리치고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 들렸어~
쿨파스 한통, 핫파스 한통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쿨파스부터 뿌려보자~
(판놀음) 관객이 파스 붙여주는 대목
(고쟁이 차림으로, 치~ 치~ 뿌리면서 관객에게 가서 파스를 뿌려달라고 한다.
관객이 파스를 뿌려주고 한바탕 놀고 객석으로 돌아간다.) 착한양반, 파스는 가지가. 우리 집에 많어. 수고했어요. 아이고 파스야, 네가 없으면 어떡허냐~! 나는 파스만 믿고 산다~!!
(왈츠-러시아민요 개사)
파스가 없으면(고수: 파스뿌리는 소리. 칙~) 어찌 살거나 (칙~) 파스로 버틴 (칙~) 나의 육신(칙~)
황혼육아 시작하면서 파스 떨어질 날이 없어라~ (칙~)
음 치~, 음 치~, 음 치치, 음 치~
열 나면은 쿨파스, 시큰하면 핫파스, 손가락엔 대일밴드.
나는요 파스 마니아~
(휘모리)
캐내세요~ 뒷목, 어깨, 허리, 무릎, 발뒤꿈치까지 파스 파스 파스!
(아니리)
‘까꿍, 월급이 입금되었습니다!’
월급 백만 원이 입금됐네~ 음메~ (관객 : 기 살어)
월급도 들어왔겠다~ 기분좋은데~
지안이가 뭘 하는지 혼자서 잘 놀고~
새롬이는 새록새록 낮잠을 잘도 자는데 깎은 밤톨마냥 이쁘고,
살다보니 한긋진 날도 있네~
그러고 있는디 지안이가 오더니
“할마 선물, 나 땜에 고생 많지~?” 하면서 주는데 빨간 종이, 카네이션 꽃이구나.
“카네이션 꽃이네~ 이거 엄마 줄라고?”
“아니~ 할마꼬야~흥~” 하면서 수줍게 가는디.
“옴마, 아하하하~ 아니 큰손주 노릇허나 아하하~ 다 컸네 다컸어. 아이거 다 컸네~ 카네이션 하하하하 빨간 카네이션 하호호 흑~ 근디 왜 이렇게 눈물이 난다냐~ 아이그 주책스럽네”
눈물을 닦어가며, 빨래를 개가며, 테레비를 틀었더니
‘송가인이어라~~~~~~!’
“오늘 로또 맞었네~~”
(고수가 송가인을 소개한다. 소리꾼이 가발 쓰면 송가인으로 변신한다)
고수 : 안방의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진도의 딸, 진도의 자랑, 판소리의 명창, 트롯트 여신, 국보급 국민가수 송가인양을 여러분께 소개해 올립니다. 큰박수 부탁해요~~~
(가수 송가인으로 변신하여 노래한다)
용두산아 용두산아~ (꼴까닥)
(가발 벗으면 이덕분으로 변신한다. 사위는 객석의 관객이 한다.)
“사위~ 자네 언제 왔는가~? 아이고, 오늘 일찍 퇴근했네. 사위 손 들어봐. (관객이 손을 든다) 우리 사위에요~ 잘 생겼죠~? 인물은 좋은데 테레비 켰다고 저 눈깔을 까뒤집어가지고 눈깔 부라리는 것 좀 봐 장모한테 저거~ 아니, 송가인을 내가 봤지 애들이 봤는가? 오늘 참 운수 좋은 날이다 했네~ 막판에 이렇게 꺾일 줄 어떻게 알았겄슈~ 이럴 땐 꺾는 음인디 아아아아아아~~
(진양조)
슬금슬금 지적질이여
텔레비도 못 보게 하면 무슨 재미로 살라하고 민망하고 섭섭허네
슬금슬금 지적질이여
손녀한테 밥을 줄 때 (새롬아 뜨거워) 호호 불었더니
‘(팔짱 끼고 지시한다) 엄마~ 드럽게 ~ 병균 옮아~ 그 밥 버려~’
슬금슬금 지적질이여
생선 가시 이빨로 발라 아이 숟갈에 올렸더니
‘(팔짱 끼고 지시한다) 엄마는 왜 그래~ 드럽게~ 그 생선 갖다 버려~’
슬금슬금 지적질...
(아니리)
“에라이 내가 드러워서 못해먹겠네~ 이것들이 점점 대놓고 갑질이여”
(동살풀이)
대놓고 갑질 (관객 : 대놓고 갑질) 대놓고 갑질 (관객 : 대놓고 갑질)
엄마, (팔짱끼고 냉정하게) 애들한테 사탕 단 거 주지마.
대놓고 갑질 (관객 : 대놓고 갑질)
엄마, 행주로 애 입 닦지마. 대놓고 갑질 (관객 : 대놓고 갑질)
엄마, 애들한테 약속한건 꼭 지켜. 그게 다 애 교육이야.
대놓고 갑질 (관객 : 대놓고 갑질)
엄마,(삿대질한다) 내가 애 앞에서 욕하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 예쁜 말 좀 쓰자고 몇 번을 말해 몇 번을 말하냐고~!“
대놓고 갑질 (관객 : 대놓고 갑질) 대놓고 갑질! (관객 : 대놓고 갑질!)
(아니리)
“에라이 썪을~! 니 새끼니까 니가 알아서 니가 키워~ 내가 더 이상은 못 하겄어. 나 그만 둘란다~!”
이덕분씨가 앞치마를 끌러서 부엌바닥에 팍~! 내동이치니~
딸이 부리나케 ‘엄마~ 갑자기 왜 그래~?’ 소리를 빽~ 질러놓니 집안이 썰렁~
그때 지안이가 딱 오더니
‘엄마는 왜 일도 안하면서 할마한테 뭐라 그래~?’
(사이)
“거봐라, 아무리 어린애라도 보는 눈은 다 있네그려.”
사위가 아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문만 빼꼼히 열고
이 전쟁을 지켜보는디
(중중모리)
“엄마, 도대체 왜 그래? 엄마~ 갑자기 왜 그래~? 애 봐주기로 했으면 끝까지 봐줘야지~ 그만 둔다니 웬 말이여~?”
“내가 뚜껑 열려서 더 이상은 못 허겄다~너 같으면 허겄냐?”
“엄마, 내 말 쫌~ 들어봐. 내가 애들 다 키우고 세상을 나가면 누가 날 써주겠어~? 엄마는 경력단절 몰라?”
“그 정도는 압니다요. 그만 좀 무시혀. 사사건건 트집, 하는 일마다 금지!
이건 시집살이보다 더 하네!”
“엄마 그렇게 기분 나뻐? 애들 잘 키우려고 그러는 거였잖아?”
(자진모리)
덕분씨 갑갑하여 덕분씨 갑갑하여
“에미야, 들어봐라~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손주를 보는 것은, 손주가 예뻐서라기보다 내 딸이 잘되라고, 너 하나 잘 되라고. 내가 돈이 있냐 빽이 있냐!
너한테 해줄 것은 내 몸뚱아리 하나라서~ 내가 너 어릴 때 해준 게 없어서, 그게 너무 미안해서.....”
“엄마, 엄마~ 다 알어. 다 알어. 여까지 온 거 다 엄마 덕분이야~”
“덕분이라고 하지마. 제일로 듣기 싫어~”
“엄마~ 엄마도 알잖아. 엄마 없으면 안돼요. 엄마가 답이야~!”’
“내가 왜 답이여? 나라님는 뭐하고, 시장님은 뭐하고, 장관님은 뭐 하는 겨? 나 답 아니여. 나 답 안 할란다. 나 집에 갈란다!”
(중중모리)
딸이 급히 엄마 다리 한 짝을 붙잡고
“엄마~! 내가 잘 못했어~ 엄마 가지마, 가지마!”
덕분씨가 한 짝 다리 질질 끌고 가며
“놔라 놔~ 놔 이것아 놔~”
딸이 더욱 매달리어
“이왕에 가실테면~ 기왕에 가실테면~ 지안이도 죽이고 나도 죽이고 새롬이도 죽이고 당신 사위 마저 죽여 땅에 묻고 가면 갔지 살려두고는 못가리라. 엄마가 없으면 나는 꼼짝달싹 못해요~ 당장 내일 나 출근 어떻게 해? 어린이집, 유치원은 누가 데리고 가냐고~? 대책없이 왜 이래요~ 여보~ 어서 와서 엄마 좀 붙들어봐~ 엄마 엉엉, 이대로는 못가지요~”
(아니리)
사위하고 애들이 뛰쳐나와 보니 외할머니가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고 있거든.
지안이가 지금 외할머니 가시면 영영 못 볼 줄 알고
“할마 따랑해요~ 가지마!” 쏜살 같이 달려서 총알같이 할머니 품에 팍~!
안겼는디 순간, (허리 뼈 뿌러지는 고수의 북소리) 뚜드드득!! 아이고 이게 뭔 소리냐?
그때 새롬이가 오빠한테 질 새라
“할마, 나도 따랑해~!” 쏜살같이 달려서 또 할머니 치마폭에 팍! 몸을 던졌는디, 다시 한 번 (허리 뼈 뿌러지는 고수의 북소리) 아아아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허리 뼈 뿌러지는 고수의 북소리가 요란하다) 그만 좀 뿌러뜨려~ 다 뿌러졌어, 다 뿌러졌어~
“아이고~! 에미야~ 나 죽는다~!”
딸 직업이 간호사. 이 상황이 뭔지 바로 알고
“엄마 움직이지 마~~! 모두 얼음~!”
(고수: 땡~!) 털썩~!
(이덕분이 쓰러진다)
(진양조)
(창조)
그동안 뿌러질락말락 꺾어질락말락 고이고이 애꼈던 허리가 뿌드드드득
뿌러지니
(진양조)
황혼육아 5년 만에 딸네집 신발장에서 엎어져 죽게 생겼네
내 허리가 뿌러지니 누가 손주들 먹이고 입히고 내 딸 밥은 누가 챙겨주나
아이고 내 새끼들 불쌍해라~ 이놈의 노릇을 어찌를 할거나
대책없이 온 가족이 울음을 운다
(아니리)
“여보, 119, 빨리빨리, 119~ 엄마 죄송해요. 잘 못 했어요~”
손주들이 “할마 앙앙~ 할마 엉엉~~”
“그만 울어, 배 꺼질라.”
이덕분씨가 병원에 실려가기 전에 대책마련을 좀 허고 가야겄는디
이 순간에 눈에 쏙~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겄다.
“여보게 사위~ 이럴 때는 어쩌면 좋겠는가? 자네 혹시, 휴가 같은 거 생각해본 적 없어? 아니, 자네가 우리 딸보다 월급이 쪼까 적다고.... 아이고 내가 그걸 갖고 뭐라고 그러는 건 아니구~ 아이구 허리야 아이구 허리야~ 육아휴직 헐 거여, 안 할 거여?”
(관객반응) “그렇지~ 그렁게 우리 사위지요~ 우리 사위 최고네, 박수~
그리고 우리 손주들, 내가 니들 덕분에 5년 만에 휴가 얻는다. 허리, 고맙다~
니 덕분이여~니 덕분이여~ 이 말, 내가 허니 참 좋네요.
(관객에게) 니 덕분이여~ 니 덕분이여~ 우리가 이렇게 서로 덕분으로다가 오늘 배운 판소리 발성, 화병발성 있잖어, 그거. 그거 허면서 소리 질러가면서 서로 나도 살고 너도 살고 하면서 재미지게 살아봅시다~! 음메~ (관객 : 기 살아~)
(엇중모리)
그때여 사위는 육아휴직을 내고서 애 키우는 재미에 푹 빠졌지요.
진정한 아버지는 이렇게 되는구나.
그때여 덕분씨는 허리를 수술하고 병원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누웠어도
본청 아---- 떠는 음 아~~~~ 꺾는 음 아아~~ 통성 웬수야~~~~
우리도 다같이 화병 발성 해봅시다.
본청 아--- 떠는 음 아~~~~ 꺾는 음 아아~~ 통성 웬수야 아 아~~~~
소리를 지른 분은 덕분씨와 함께 화병이 씻은 듯이 깨끗이 나았대요.
그 뒤야 뉘 알리요 더질더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