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센베와 진돗개

오늘
앨범 : 어서오세요, 고양이 식당입니다 7
작사 : 오늘
작곡 : Mate Chocolate
몇 번의 밤과 몇 번의 아침이 지나고,
끊임없이 걷던 저는 가시나무처럼
앙상하게 여위었습니다.
“배고파.”
뭘 먹어도 허기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화폭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 탐스럽던 몸은
온데간데없었죠. 몸을 얻는 것이
불편한 일이라는 것을 그때야
깨달았지만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더는 걷지 못하고 저는
강가에 쓰러졌습니다. 이대로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소녀의 무덤으로 돌아가게
될까, 아니면 아무도 찾지 않는
별당의 화폭 속에 영원히 갇히게
될까, 아니면 몸이 없는 이야기가
되어 허공을 떠돌게 될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의식이 점차
희미해질 때쯤,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소리의 주인공은 까만 교복을
입고 각진 학생모를 쓴 소년이었습니다.
쓰러진 저를 보고는 허겁지겁
달려왔죠. 소년은 강물을 떠와
제 입에 흘려 넣었습니다.
애를 쓰는 모습이 어쩐지
딱해 보였죠. 어차피 뭘 먹어도
기운이 날 리 없으니까요. 소년은
가방에서 다 부서진 전병을 꺼내
제 입에 한 조각씩 밀어 넣었습니다.  
“먹어. 먹어야 살아.”
바삭바삭 부서지는, 생강 맛이
은은하게 나던 전병은 고양이가
먹어서 좋을 것이 없는
맛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의
얼굴이 진지해서 먹는 시늉을
할 수밖에 없었죠. 소년은 말간
눈으로 제가 기운을 차리기를
기다렸지만, 몇 조각의 전병을
먹어도 늘어진 앞발과 다리에는
힘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 배고픔은 어떤 음식을
먹어야 사라질까요.
풀밭에 엎드린 채 가루가 된
전병을 끝없이 제게 먹이며
소년이 말했습니다.
“어제 내 친구가 광장에서
쓰러졌어, 너처럼.”
소년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혀끝에서
달디단 군침이 돌았습니다.
“이건 그 애가 좋아하던
센베 과자야. 이걸 배가
터지게 먹고 싶다고 매일 말했었어.
먹어도 먹어도 배가 꺼지는 꽁보리밥
대신 이런 센베를 삼시세끼 먹고
싶다고. 엉뚱하지? 그 애는 집이
가난해서 이런 건 내가 나눠주지
않으면 먹을 수 없었거든. 우리
집에 센베라면 얼마든지 있었는데.
그 녀석에게 주면 죄다 먹어버릴
것 같아서 꼭 세 조각씩만 학교에
가져갔어.……그러지 말 걸 그랬지.”
어디선가 콩을 볶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목소리에 담긴 간절함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생강 맛 전병 때문일까요.
이상하게도 이야기를 듣자 발끝에
힘이 생기고 몸에 피가 도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네가 이걸 먹고 일어나면, 나도
광장으로 가서 친구를
데리고 올 거야.
어제 나는 혼자 도망쳤거든.
겁이 나서 뒤를 볼 수가 없었어.
그래서 친구가 아직도 쓰러진
자리에 있어.”
붉은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앤 다시는 센베를 먹을 수
없겠지만 네가 이걸 먹고 기운을
차린다면, 나도 광장에 친구를
데리러 갈 거야.”
짙어지는 석양 사이로 무언가 타는
냄새가 짙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척추를 쭉 늘이며 기지개를 켰습니다.
깊은 포만감이 몸을 감쌌습니다.
허기가 졌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말이죠.
제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음식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센베도 아니었죠.
네 발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켜
소년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무엇이 허기진 배를 채운 것인지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발을 모아
소년의 앞에 앉은 뒤 소년의 얼굴에
제 뺨을 문질렀습니다.
“살아난 거야?”
곧 죽을 것 같던 제가 몸을 일으키자
소년의 눈은 놀라운 듯 커졌습니다.
볼품없이 가라앉아 있던 털에는
윤기마저 흐르고 있었습니다.
남은 센베를 마저 와작와작
씹어 먹으며 저는 소년의 곁에
몸을 기댔습니다. 소년의 말간
얼굴에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이 떠올랐습니다.
“다행이다.”
오후와 저녁의 사이에서 소년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뾰족하게 솟은 귀와 길어진 주둥이,
날카로운 발톱, 구름처럼
하얀 털. 소년은 진돗개였습니다.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냄새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소년은 환하게 웃으며 석양
속으로 등을 돌려 걸어갔습니다.
짙은 화약 냄새와 뭔가 터지는
소리가 이어지는 방향을 향해
두 발로 걷다 점점 속도를
높여 뛰더니,
이내 네 발로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에 흰 털이
파도처럼 흩날렸습니다. 그토록
하얀 진돗개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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