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꿈꾸는 모두를 집어삼키는 무덤
하루에도 몇 구씩 발견되는 싸늘한 주검
하늘 아래 가장 높게 솟은 새하얀 구멍
꼭대기에 대한 상상은 내겐 오래된 즐거움
정복을 쉽사리 허락지 않는 그곳
덕분에 어떤 이들에겐 영원한 바늘구멍
허나 모두의 마음을 뺏는 요소도 바로 그것
그래, 나 역시도 그것 때문에 가려는 거야
어떤 이의 성공담을 죄다 옮겨놓은 책
떨리는 내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네
모두의 걱정을 배낭 안에다 싹 구겨 넣은 채
어깨 위에 올려놓으니 무게가 느껴져, 이제야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한 배낭을 짊어지고
각자 믿는 신 또는 무언가에게 잠시 기도
서로의 어깨를 두들기며 약속해
모두 정상에서 보기로
한발 앞서 걸어간 이들이 남겨놓은 발자국
전혀 보이지 않아, 난 찾아 헤맸지, 한참을
뭔가를 따라가는 방식에만 길들여진
나에게 그 상실감은 꽤 견디기 힘들었지
오늘 또 한 명의 동료를 보내야만 했네
그는 나와 저 밑에서 맺은 굳은 맹세에 대해
끝내 지키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면서
나지막이 말해, 애초에 오는 게 아니었어
책으로 접한 지식은 모두 부질없네
이 빌어먹을 눈보라는 당최 멈추질 않네
그 눈보라가 내 친구의 자취를 지운 것처럼
나의 존재도 지워버릴지 몰라, 어쩌면
배낭의 무게보다 날 괴롭히는 건
자꾸 부정적인 생각들이 날개를 펴는 것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을까?
고개를 저으며 발을 떼, 가던 길을 계속 가
난 이 악마 같은 언덕 위에 몇 안 남은 작은 점
떨어지지 않는 두 발을 떼게 만드는 가짜 긍정
마주친 모든 이에게 들은 불가능이란 단어
듣기도, 뱉기도 싫어
내 두 귀를 틀어막아
시체로 발견된 그는 어린 시절 나의 영웅
이젠 누군가의 주검을 보고 싶지 않아, 더는
허나 무엇보다 보고 싶지 않은 건 돌아선 후
모든 게 부질없다며 비웃는 저 패배자들의 얼굴
그들 중 한 명으로 기억되길 원치 않아, 난
일부러 두 눈동자를 꼭대기에 매달아 놔
애초에 오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호흡곤란도
숨 쉬고 있다는 증거쯤으로 여기며 나아가, 난
어깨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
내가 뱉어놓은 말의 무게
모든 것들이 날 괴롭게 해
허나 결국 도착했을 때
아래를 보는 나의 눈에 비칠 풍경을 상상해보네
그래, 난 그 상상의 노예
그게 내 두 발을 잡아끄네
그곳은 꿈꾸는 모두를 집어삼키는 무덤
하루에도 몇 구씩 발견되는 싸늘한 주검
하늘 아래 가장 높게 솟은 새하얀 구멍
꼭대기에 대한 상상은 내겐 오래된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