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에 파도 치고 거기 무지개를 향해 낚시를 던지는 사내 하나 나는 봤지
그 투명하고 가느다란 낚싯줄에 매달려 허공을 날아가는 새우, 나는 봤지
아니, 납덩어리에 풍덩, 파도 속으로 사라지는 것도
또, 그 사내 장화 발치에 죽은 생선들이 담긴 일제 아이스박스도 나는 봤지
동태평양, 멕시코 연안 그들의 긴 긴 모래밭,
그 찬바다에 낚시를 던지고
석양을 바라보며 웅숭그리고 섰던 맨발의 추레한 중년 멕시칸 사내와
그 사내 발치의 작은 고무통,
거기 어린 가오리들의 슬픈 목숨과
그들의 구질구질한 살림살이도 나는 그 바다에서 봤지
그 바다에서...
그렇게, 아직 20세기의 제 3세계 남루한 사내들이 서로를 마주보며
싸구려 미끼를 던지는 먼 먼 바다위론
태양 빛, 한 태양빛 아래 동과 서로 날짜를 바꾸는 일자변경선이 지나가고
그 보이지 않는 선 위로 또
파도보다 조밀한 해도를 따라 거대한 상선들과 구축함대가 지나가고
뭍에 없는 희망을 파도 속에서 찾으려는가
아~ 바하 캘리포니아, 아~ 정동진
맨발과 만성 비염의 코흘리개 애들, 그리고 부스럼 투성이의 멕시코 개들,
먼지 뽀얀 트레일러 마을과 찡그리며 인사하고
긴 긴 사막 위로 끝도 없이 세워진 함석 판때기 사이
철통같은 국경선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오다
US 5번 국도 해안 절개지 아래 길다란 평원에서 기동훈련하는 수 십대의 헬기 부대도 나는 보았지
또, 나른한 샌디에고 해안, 온 몸 출렁거리는 지방질의 살갖 뽀얀 백인 노인네들 일광욕 즐기는
저 풍요조차 지루한 백사장의 늘 따스한 햇살과 컬러풀한 튜브들도 나는 봤지
아~ 바하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정동진...
저 기차는 어디로 가는가...
강릉 시내 들어와 중앙시장 골목을 헤매다 마른 오징어를 한 축 샀지
또 한 골목을 돌아 좌판에서 생선 내려치는 무쇠칼, 가장 큰 칼을 하나 샀지
후두둑 소나기 노점 천막을 후려치고 지나간 뒤
중앙로 철길 너머 먼 하늘 위 쌍무지개로 나난 봤지
그날 밤에도 영화배우 박 아무개는 백주를 마시며 돈을 벌고, 돈을 세고, 또 맥주를 마시고
나도 테레비를 보며 맥주를 마시다 취해 잠들어
꿈에 다시 동태평양 그 찬 바다와 그 투명한 햇살
정동진 바다 끝 외무지개와 강릉 시내 하늘 위의 쌍무지개를 다시 봤지
또 세 쌍무지개, 네 쌍무지개를 봤지
그리고, 아직 날이 서지 않은 그 무쇠칼로 저 허망한 무지개들을 밤 새 자르며, 휘두르며...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다시 수평선 멀리 멀리 솟아오르는 수많은 무지개들을 나는 봤지
아~ 정동진, 아~ 정동진...
"선로에 계시는 분들은 열차가 들어오니, 모두 바닷가쪽으로 내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아~ 정동진, 아~ 정동진...
"모두 바다로 내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바다로 내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아~ 정동진, 아~ 정동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