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김해숙(가야금 연주인, 중앙대 강사)
정남희(1905-1984)는 최옥산(1905-1956), 안기옥(1905-1974)등과 동년배로 가야금산조의 제2세대에 든다. 이 세사람은 모두 남한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한 뒤 그곳에서 생을 마쳤는데 정남희는 특히 북한에서 공훈배우, 인민배우, 평양음악대학 교수를 지내기도 하면서 활약하였다. 그는 가야금산조 뿐만 아니라 가야금병창 등 많은 분야를 고음반에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의 가야금산조 고음반은 1934년에 녹음한 리갈청반의 석장짜리 고음반을 복각하였다. 이 음반에는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자진머리와 자진 자진머리로 짜여져 가야금 산조 한바탕을 이룬다.
정남희의 이 연주는 매우 기백있게 느껴진다. 추진력있고 시원스러우며 대담하고 남자답다. 필자는 대부분 여자명인으로 구성된 가야금산조의 제3세대를 통해서 산조음악을 접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산조의 연주세계는 매우 섬세하고 여린 감정의 수채화들로 그려지고 있다고 여겨 왔었다. 그런데 이런 연주에 비해서 정남희는 당당한 기상으로 다가오고 뭔지 모르게 조물거리고 있지도 않으며, 때절지 않은 순수함을 보여준다. 이미 고인이 되신 명고수 김명환(1913-1989)은 “너무 멋낼려고 하지말고 빨래 펴듯이 착착펴서 연주해야 큰 음악이 된다”고 늘 일러 주었는데 정남희의 연주를 듣노라니 새삼 김명환선생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정남희의 가야금 산조는 김윤덕(1918-1978)에게 전승되었는데 진양조는 현존 다른 유파의 산조들이 그렇듯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고 있지 않다. 진양조는 지줄을 본청으로 한 솔음계(우조길)로 시작해서 바로 동줄, 땅줄 본청의 미음계(계면길)로 바뀐다. 그런 다음 징줄 본청의 레음계(평조길)로 돌장가락을 탕탕하게 연주한 뒤 시워스레 평조를 거쳐 계면에 이르고 있다.
기존의 가야금산조의 중머리는 흔히 평조 또는 우조가락을 내는데 정남희는 계면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평조길, 계면길로 번갈아 가락을 짜는데 샘물에서 솟아나듯 새가락이 절로 난다. 정남희는 묻고 답하는 대화적 방법과 대비되는 가락을 만드는 것, 아니면 짧은 가락을 반복해가는 가운데 리듬단위를 점점 줄어들게 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킨 뒤 풀어가는 방법들로 가락을 엮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