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떠나간 이 자리에
큰 구멍이 남아
나 홀로 걸어가는 이 길에
큰 구멍이 남아
더 깊게 빨려 들어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듯
내 몸이 아닌 듯
알 수 없는 공간 속에
내 시간을 뺏겨 잃어버린
시간마저 내 의식을 삼켜
초점을 잃어가는 퀭한 눈동자
날 움직이는 세포들이
다 날아다녀
이 곳은 어딜까 마치
미스테리 써클
블랙 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여
내 몸이 종이 같아
내 맘이 공기 같아
날 괴롭혔던 네가
한결 가벼워졌어
늘 거머리같이 붙어있던
너란 그림자
항상 낮과 밤을 가리지 않던
폭주기관차
그만 멈추길 바랬던
나는 아이였나 봐
계속 칭얼대는 모습 때문에
네가 못 갔잖아
미련이었을까 값싼 동정이었을까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비겁했어
너무 그대가 떠나간 이 자리에
큰 구멍이 남아
나 홀로 걸어가는 이 길에
큰 구멍이 남아
이 알 수 없는 구멍 속으로
긴 시간 머물렀던
우리의 기억들을 묻는다
그대가 그리운 걸까
그때가 그리운 걸까
좋았던 날보다
많이 아파했던 날들이
많았음에도 나는
그때가 제일 좋았어
사랑만으로 충분했던
천금 같던 날들
사랑이 그리운 걸까
사람이 그리운 걸까
함께였던 날보다
혼자였던 날들이
많았음에도 나는
그때가 제일 좋았어
생각만으로 벅찼던
깊은 바다 끝과 같던
너를 보낸다는 건
숨을 참고 사는 것
꿈을 버린다는 것
삶을 내려 놓는 것
넌 마치 사막에 피는 꽃
물을 주지 않아도
너는 아름다웠고
조금 더 크게 자랐지
너무 낮게 날던
나는 그냥 목이 말랐지
그저 우물을 찾아 살기 위해
너를 두고 날아갔었지
난 자라지 못했어
지켜주지 못했어
열등감에 사로잡힌 구멍투성이
그대가 떠나간
이 자리에 큰 구멍이 남아
나 홀로 걸어가는
이 길에 큰 구멍이 남아
이 알 수 없는 구멍 속으로
긴 시간 머물렀던
우리의 기억들을 묻는다
모두 남김없이
적지 않은 나이에 작지 않은 사랑
그래서 더 아픈 걸까
묻는다
모두 남김 없이
쉽지 않은 시작 어렵지 않은 이별
그래서 허무한 걸까
기억을 지운다
조각을 잃어버린 펴즐 같던 우리
아무리 맞추려 해도 답이 없었지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긴 했었나
결국 무너져버린
가벼웠던 믿음 물과 기름
무엇을 원했던걸까 그 세월 동안
왜 놓지 못했을까 습관 이였나
없어도 안 죽어 너 없어도 살어
이렇게 너를 묻고 돌아서는 지금
내일은 살 수 있을까
내일은 잘 수 있을까
내일이 오기는 할까
내일 또 다시 너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