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군요.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만큼 제 구미를 당기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말씀해 보시죠.”
“땅속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나를 볼 수 없고, 나도 남을 볼 수
없잖아요. 아늑하고 고요하고.
누군가의 시선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그런 게 좋았을 거예요.
그러니까 흙에서 나오지 않은 거겠죠.”
“잘 아시는군요. 흙정어리의 마음을.”
물개 씨는 당연하다는 듯
피식 미소를 짓습니다.
“먹이니까요. 바다에 살았을 땐
언제나 정어리를 찾아 헤엄쳐
다녔죠. 정어리는 떼를 지어
다니잖아요. 하지만 몇 마리는
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무리에서
이탈해요.
누구도 떨어진 정어리를 위해
지느러미를 흔들지 않죠. 그
렇게 몇 번 떨어져 나오다 보면
감자가 되든 정어리가 되든 상관이
없어지는 순간이 와요.
주방장님은 뭍에서 태어났으니
모르겠지만, 바다는 지독하게
차갑거든요.”
그렇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뭍이
아니라 땅속이 좋았던 것이군요.
식재료의 세계는 역시 신비하고
놀랍습니다. 하지만….
“정말 감자라도 괜찮은 걸까요?”
물개 씨가 대답합니다.
“죽기 직전까지 물속을 헤엄칠
필요가 없잖아요, 감자는.”
“그런가요.”
“땅속에 푹 묻혀 있기만 하면
되는걸요.”
어쩐지 부럽다는 얼굴이군요.
“그럼 물개 씨도 감자가 되고
싶습니까?”
“네?”
물개 씨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오릅니다. 이상한 일이군요.
조금 전까지는 감자를 부러워하는
얼굴이었으면서, 역시 타인의
마음을 읽는 일은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어쨌거나 이 녀석은 정어리가
아닙니까?”
저는 물개의 손에 있는 흙정어리를
보며 꽤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무래도 저는 요리사니까요.
식재료의 특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맛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중요하지 않죠.
정어리 맛이 난다면 그것은
정어리일 뿐, 본질은 바뀔 수
없는 거니까요.
“한 입만 먹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흙정어리는 영락없는 생선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겠죠.
그저 흔하디흔한 감자라고
생각할 지도요. 하지만 물개 씨는
알지 않습니까. 이게 감자입니까?”
저는 물개 씨의 손에 들린
흙정어리를 가리키며 묻습니다.
물개 씨는 어쩐지 난감한
표정입니다.
“확실히 맛은 정어리였어요.
신선하고 아주 맛있었죠.”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정어리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
“물개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이들이 물개 씨를 붕어나
개미로 부른다고 해서 물개 씨가
물개 씨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까요.”
“물개 씨가 물개 씨가 아니게 되는
방법은 하나뿐이죠.”
“그게 뭔데요.”
“물개 씨가 물개 씨 자신을
물개가 아니라고 믿는 것.”
“……!”
“그게 아니라면 언제든 물개 씨는
물개입니다.”
“저는… 그냥 제가 감자 같아요.
모두 다 저를 감자라고 하니까요…….”
풀 죽은 손님의 얼굴에 답답한
마음이 솟아올랐지만, 이야기 값을
충분히 치른 물개 씨에게
불친절한 모습을 보일 순 없습니다.
“그럴 땐 오늘 먹었던 흙정어리
수프를 기억하십시오.
자신을 잊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정말요?”
“범고래에게 속지 마십시오.
모양이 어떻든,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어떻게 바라보든, 정어리는
정어리입니다. 물개 씨는
물개 씨입니다.”
물개 씨의 까만 눈동자에서
툭- 물방울 하나가 떨어집니다.
“사실 감자도 맛있긴 합니다만.”
제 말을 들은 물개 씨가 식당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웃음을 터트립니다.
“흙정어리가 훨씬 맛있어요.”
동의하듯 저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무래도 특별한 식재료에 대단한
요리 솜씨까지 더해졌으니,
감자 따위가 상대할 수는 없겠지요.
“저, 용기가 생겼어요.
흙정어리는 엄청나게 맛있지만,
저는 역시 땅속에서 살지는
않을 거예요. 범고래가
뭐라고 하든,
저는 물개니까.”
“네, 역시 물개니까.”
물개 씨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납니다.
여기는 바다가 아닌 육지.
물에서는 범고래가 상위포식자일지
몰라도 이곳에서 물개와 범고래는
동등합니다. 물개 씨의 말처럼
바다에서의 악연이 인간 세계까지
이어지는 것은 불공평합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좀 더 인간다운
결말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그러니, 물개가 범고래에게
당하고만 있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오늘 제 이야기는 충분했나요?”
들어올 때보다 한결 밝아진
얼굴로 물개 씨가 묻습니다.
“물론입니다.”
자리에서 씩씩하게 일어나는
물개 씨를 향해 정중한
대답을 건넵니다. 훈기로 가득 찬
고양이 식당 안에 수프 끓는 소리가
보글보글 울려 퍼집니다.